초기 불교 경전에 속하는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만약 늙고 병들고 죽는 이 3가지가 없었다면 여래는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질병의 치료와 함께 노화를 늦추거나 막고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유전자는 물론이고 이제 미토콘드리아(세포의발전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작은 기관)와 같은 세포 내 소기관에 대
한 연구까지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고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가설이 썩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한 생명이 탄생해서 어느 순간이 되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내경》 〈영추(靈樞)〉에서는 사람의 인생을 100세로 보고 40세를 기점으로 점점 노화가 진행된다고 말합니다.
50세가 되면 간장의 기운이 약해지면서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하고, 60세가 되면 심장의 기운이 약해져 걱정과 근심이 늘고 몸이 게을러진다고 합니다.
70세가 되면 비장의 기운이 허해져서 피부가 마르고, 80세가 되면 폐의 기운이 쇠하면서 정신력이 약해져서 말실수를 자주 하게 되며, 90세가 되면 신장의 기운이 다해서 장부와 경맥의 기운이 비게 되고, 100세가 되면 오장이 다 허해지고 생명력이 다해 몸만 남아 있다가 마침내 죽게 된다고 합니다.
부모의 사랑이라는 기운이 결실을 맺어 작은 수정체에서 시작한 한 인간이 타고난 생명 에너지를 다하고 나면 다시 기
운은 흩어지고 육신은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갱년기를 말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갱년기를 생명의 자연스러운 흐름의 한 과정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큰 흐름을 놓치고 지금 내 앞에 닥친 전에 없던 증상들과 불편함만을 생각하는 것은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이라는 산을 오르면서 만나게 된 한 풍경, 한 그루의 나무로 갱년기를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갱년기와의 화해는 시작됩니다.
갱년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을 들라면 바로 ‘몸이 예전 같지않다’는 것일 겁니다.
물론 성장이 멈춘 순간부터 노화는 시작되는 것이므로 몸이 예전 같지 않아진 것은 한참 전부터겠지요.
하지만 앞서 《내경》에서 언급한 것처럼 40대 중후반을 거쳐 50대를 지나면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확실한 변화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남성은 주로 체력이나 근력의 저하, 만성적인 피로감 그리고 정력으로 표현되는 성 기능의 저하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은 폐경이라는 변화를 전후로 해서 안면홍조감, 상열감과 상부에 발생하는 땀, 가슴 두근거림과 감정의 불균형, 피부 노화 그리고 신체의 통증 등을 동반하는 갱년기 증후로 인해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녀 모두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이전 같지 않다던가 감정적으로 예민해져서 부부간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러한 증상들은 노화라는 큰 과정에서 일어나는 호르몬 변화 때문에 발생합니다.
사춘기를 거쳐 남성과 여성이라는 신체적 특징을 가진 존재로 성장한 것과는 반대로, 이제는 갱년기를 거치면서 남성과 여성 호르몬의 절대적 우위에 변화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중성의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의 그 무엇이 변화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갱년기가 힘든 것은 이러한 호르몬 분비의 변화에 따른 신체적인 증상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나이에 감당해야 할 가정과 사회적 책임의 무게, 그리고 젊음을 예찬하는 현재 우리 사회의 풍조 또한 이 시기의 남녀를 괴롭게 만듭니다.
과거 사회에서 50대는 어느 정도 인생을 완성해나가는 나이였습니다.
공자가 나이 50을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한 것도 그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50대는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아직은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은 그야말로 한참 때입니다.
그 역할은 과거와 달리 젊은 사람못지 않는데, 몸의 변화는 야속하게도 그 옛날과 똑같은 것이지요.
이러한 부조화가 몸과 감정과 정신의 모든 측면을 힘들게 합니다.
말하자면 아직은 젊어야 한다는 압력이 내부와 외부 양쪽에서 가해지는 것이지요.
인생 전체를 놓고보면 한 과정에 불과하지만, 뭣 모르고 지났던 사춘기와는 달리 이제 인생을 좀 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겪는 이
변화의 시기는 오히려 당황스러울 수도 있고 제법 힘들 수도 또한 상당 기간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 변화를 거스르려고 할수록 그저항은 커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일상생활에 불편을 가져올 정도의 증상이 없다면 비틀스의 노래처럼 갱년기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그냥 놔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결에 몸을 맡기듯 바람에 깃털이 날아가듯 가만히 바라보고 느끼고 놔둔다면 오히려 조금 더 편하게 이 시기를 지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힘든 것을 마냥 참을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내 이 갱년기를 이겨내리라!’ 하는 전투적 생각보다는 ‘그래, 몸과 마음이 이제는 가을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마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갱년기(更年期)란 단어를 인생을 다시 한 번 새롭게 하는 시기로 해석하면 어떨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시기의 변화들을 다 컸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겪는 성장통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절반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역할로 열심히 살아왔으니, 이제는 그 성의 역할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더욱 깊은 성장을 준비하는 시기라는 것이지요.
이제까지 수십 년간 입었던 몸과 마음의 옷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으려고 하니 불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이전의 익숙한 옷만을 입으려고 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간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 더 깊고 진지한 질적인 성장을 이루어내는 그런 인생으로 진입하는 시기가 갱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으로 내 안에 일어나는 변화들을 바라본다면 훨씬 유연하고 넉넉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갱년기 또한 그 힘을 다하면 끝이 납니다.
하지만 이 격랑의 시기에 어디를 목표로 해서 어떻게 해쳐 나왔는가에 따라 그 이후의 삶의 궤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갱년기는 질환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의 시기가 가진 에너지를 잘 활용한다면 조금 더 밀도가 높은 인생의 궤도로 점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갱년기 남녀를 위한 책 처방
•대릴 샤프 지음, 《생의 절반에서 융을 만나다》, 류가미 옮김, 북북서, 2009년.
•이춘성·존 리·제시 핸리·버지니아 홉킨스 지음, 《여성도 몰랐던 여성의 몸 이야기》, 이재철 옮김, 명상, 2002년.
생활한의학연구소
한의사 김형찬입니다. 생각과 일상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믿음으로 환자분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생각들을 담아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한의학》, 《50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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