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찾는 건강

도토리(상수리)의 건강학 - 위장을 튼튼히

김형찬 한의사의 생활한의학연구소 2024. 3. 22.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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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참나무류의 열매를 모두 ‘도토리’라고 부르는데, 상수리나무 열매를 따로 ‘상수리’라고 합니다.

의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실(橡實, 도토리)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쓰며 떫고 독이 없다. 

설사와 이질을 낫게 하고 위장을 든든하게 하며 몸에 살을 찌운다. 

수렴하는 작용으로 설사를 멈춘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흉년에 먹는다. 
익으면 꼭지가 달리는데 상수리나무와 떡갈나무 열매가 모두 꼭지가 있지만 상수리가 좋다.

아무 때나 껍질과 열매를 함께 따서 약으로 쓰는데 모두 불에 볶아서 쓴다.   



우리가 흔히 가루를 내어 묵을 만들어 먹는 도토리는 주로 위장을 좋게 하는 작용으로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고 영양을 공급하는데, 이런 까닭으로 흉년에 구황식품으로 쓰였을 것입니다.

또한 한의학에서 떫은맛(澁味)은 수렴하는 작용이 있다고 보는데, 이런 작용으로 설사와 이질을 낫게 하고 장을 좋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도토리묵의 중금속 해독작용과 항암작용도 보고되는데, 잘못된 섭생과 환경오염으로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토리 껍질(꼭지)은 장이나 자궁의 부정출혈, 그리고 설사와 이질을 멎게 하는데 이것도 수렴하는 성질 때문입니다. 

또한 도토리 껍질은 천에 검은 물을 들일 수 있으며 이를 이용해 수염과 머리털을 검게 물들인다고 했으니, 천연염색이나 천연 머리 염색 재료로도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기록에는 나무껍질도 쓴다고 하였는데, 다려서 먹으면 설사를 멎게 하고 피부가 헐거나 부풀어 오르며 아픈 증상에 쓴다고 하였습니다.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 우리 가족은 지금의 뒷밭 앞쪽에 집을 지어서 이사를 했습니다. 

초등학교 옆에 있던 옛날 집에는 참 많은 추억이 있었지만, 가족 모두가 새집으로 이사한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나 저는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방을 갖는다는 사실에 기쁜 감정을 숨기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생이 될 무렵 사춘기 감정의 영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작은 집에 방을 여러 개 만들다 보니 그랬겠지만 제 방은 유난히 작았습니다. 

책상과 책장을 빼면 겨우 잘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북쪽으로 난 창문 덕택에 겨울이면 웃풍이 심해서 이불 밖으로 드러난 코가 시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작고 추운 방은 청소년기과 청년기 내내 세상 어느 곳보다도 따뜻한 안식처였습니다.

북쪽으로 난 창문을 열면 덧댄 처마 아래로 밭이 보이고 그 뒤로 마을 뒷산이 보입니다. 

할 일이 없을 때면 낡은 나무의자에 앉아 한참씩 창문 밖을 바라보곤 했는데, 계절에 따라 바뀌는 풍경들은 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그림이었습니다. 

특히 비가 내리는 밤에 창문 아래 누워서 빗방울 소리를 감별(빗방울은 어디에 떨어지는가에 따라 그 소리가 다르지요)하는 일은 아무도 모르는 아주 개인적인 즐거움이었습니다. 

또한 유난히 조용한 겨울 아침 창문을 열었을 때 펼쳐진 눈 덮인 밭과 산의 모습은 말은 빼앗아 가고 소리 없이 충만한 기쁨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창문 밖으로 옥수수 싹이 돋아나고 소나기가 내리고 고추가 붉어지고 고드름이 맺히면 일 년이 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창문 밖 세상에서 이제는 사라진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쿵! 쿵!’하는 나무 치는 소리입니다. 

가을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던 이 소리는 뒷산에 있는 상수리나무를 돌로 치는 소리였는데, 마을 아주머니들이 밤새 땅에 떨어진 상수리를 줍고 나서는 둘레의 큼지막한 돌로 나무를 쳐서 상수리를 떨어뜨리셨던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부지런하고 상수리를 많이 모았던 분은 순복이네 할머니와 선영이네 어머니셨지요. 

저희 어머니도 간혹 그 대열에 참가는 하셨으나 늘 큰 재미는 못 보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순복이네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선영이네 엄마도 늙으셨습니다. 

그리고 왠지 동네 사람들 머리에서도 뒷산의 상수리나무는 점차 잊혀져가는 듯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머님 말씀으로는 이제 상수리가 얼마 열리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가끔 뒷밭 가장자리에서 이제는 제법 늙은 나무를 올려다보면, 그 까닭이 나무의 외로움 때문일거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밭농사가 안 되면 산농사가 잘 되어서 먹고 살 길이 생긴다고 합니다. 

목재의 가치도 있지만, 이전에 먹을 것이 귀할 때는 도토리도 중하게 쓰였겠지요. 

이런 쓰임 때문에 이들 나무를 ‘참나무’라고 부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채취로 산의 도토리가 씨가 말라 산짐승이 먹을 것도 없게 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곤 합니다.

 방송프로그램에서 뭐가 몸에 좋다면 얼마안가 시장에서는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산과 들판에서도 그 약초를 찾기 어려워지는 세태이고 보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왜 이렇게 여유가 없어졌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전에 정말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에도 열매 몇 개는 까치밥으로 남겨두던 그런 마음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풍요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궁핍해지고 메말라가는 것만 같습니다. 

과연 끝없는 경제성장이 이런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까요? 

제 짧은 생각으로는 경제성장의 약속도 등산로에 세워진 벌금 경고문도 다람쥐와 청솔모의 도토리를 지켜주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집에 내려가면 가끔은 옥상에 앉아 뒷산 상수리나무 사이로 바람이 흘러가는 가는 모습을 한참씩 바라보곤 합니다. 

그렇게 있으면 이런 저런 상념에 젖기도 하지만 마음은 한없이 평안해집니다. 

자연은 무엇인가를 주어서 뿐만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참 많은 위안을 줍니다. 

서울 사람들이 주말과 여름만 되면 미친 듯이 강원도로 달려가는 이유도 같은 것이겠지만, 언제쯤이나 다시 사람과 자연이 오롯이 공존하는 때가 올는지……. 

이제는 열매를 얼마 맺지 않는 상수리나무를 보고 있으니, 어쩌면 우리가 정말 행복했던 시대는 새벽녘 상수리나무에서 나던 ‘쿵!’하는 소리가 사라지면서 끝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