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 폐와 위의 탁한 기를 맑게 하고 보강함
최근에는 혈전용해 작용에 따른 혈액순환 개선 효과로 은행잎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은행의 효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은행
"성질은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있다. 폐와 위의 탁한 기를 맑게 하며 숨찬 것과 기침을 멎게 한다.
일명 백과(白果)라고 한다. 또한 잎이 오리발가락 같기 때문에 압각수라고도 한다.
은행나무는 키가 아주 크며 열매는 살구씨 같기 때문에 은행이라고 하였다.
익으면 빛이 노래진다.
속껍질은 벗겨 버리고 씨만 삶거나 구워 먹는다.
생것은 목구멍을 자극하여 어린이가 먹으면 놀라는 증이 생긴다."
은행은 폐를 촉촉하게 적셔주고 기침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려 두었다가 몇 알씩 굽거나 쪄 먹으면 좋은데, 특히 노인들의 약해진 폐 기운을 보하고 기침을 멎게 하는데 좋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중독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한 번에 조금씩 먹는 것이 좋습니다.
가을 어느 날, 어머니는 식구들이 먹을 산적 꼬치를 꿰고 계셨고, 저는 옆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어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잠깐 전 부치는데 필요한 재료를 사가지고 왔다간 큰누나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많이 불어 면사무소 마당에 있는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잠시 망설이시더니 꼬치를 마저 꿰시고는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나섭니다.
저도 바람도 쐴 겸 어머니를 뒤따라 나섰습니다.
과연 누나 말대로 면사무소 주차장과 그 앞 길에 은행이 제법 떨어져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얼마 열리지 않았다던데, 해갈이를 하는지 올해는 많이 열렸습니다.
나무가 오래 되어서인지 은행 알이 제법 굵습니다.
어머니는 고무장갑을 끼고 오셔서 부지런히 주우셨고, 저는 꼭지가 달린 녀석들로만 느릿느릿 주워 담았습니다.
잠깐 주웠는데도 봉지가 가득 찼습니다. 가을날 한때 아르바이트 치고는 꽤 괜찮은 수입을 올렸습니다.
면사무소 앞마당의 은행나무는 제가 아주 어릴 적부터 거기에 있었습니다.
어느 해인가는 은행을 나무채로 팔아 상인이 와서 털어간 적도 있었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은지 떨어지는 대로 동네 사람들이 주워갑니다.
주차장 여기저기 은행이 떨어져 있습니다.
냄새는 별로 좋지 않지만, 열매는 눈으로만 보면 제법 탐스럽습니다.
주운 은행은 과육이 삭아서 없어질 때까지 기다려서 씨를 깨끗이 씻어 말려두었다가, 약밥을 찔 때도 쓰고 겨울에 몇 알씩 구워 먹으면 맛도 좋고 몸에도 좋습니다.
은행나무는 유난히 오래된 나무가 많은 것 같습니다.
몇 해 전 성균관에서 본 은행나무도 인상이 깊었는데요, 듣기로는 히로시마 원폭 속에서도 은행나무는 살아남았다고 하는데 그 만큼 강한 생명력을 가졌다는 말이겠지요.
가을 한낮 느닷없는 수확의 즐거움을 안겨준 면사무소 앞 은행나무도 사람 손만 타지 않는다면 앞으로 수백 년을 살면서 은행을 맺고 또 가을날 바람에 잘 익은 은행을 떨어뜨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 수백 년 뒤의 누군가도 저처럼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지요.
그 시절의 사람을 위해 은행나무만큼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