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공 - 부기과 뭉친 것을 풀어주는 잡초
90년대 초반 한때 공해가 심한 울산과 온산공단의 불모지에 유독 자리공이 번성해서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한 연구자는 자리공이 땅을 산성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서 전국적으로 자리공을 뽑아내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후의 연구에 따르면 땅을 산성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산성화된 땅에서 다른 종보다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특정 환경에서 잘 자라거나 사라지는 등 환경조건에 민감한 식물들을 지표식물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쇠뜨기나 수영은 산성 땅에서 잘 자라고, 거미고사리가 자라는 곳은 석회암 위의 중성 또는 알칼리성에 가까운 땅입니다.
또한 흑쐐기풀과 외대바람꽃이 자라는 숲속은 축축하고 비옥한 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나팔꽃이나 할미꽃은 환경오염이 심한 곳에서는 자라지 않는데, 저도 어릴 적 동네 언덕에서 할미꽃을 본 뒤로는 아직 한 번도 시골집 둘레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지표식물들은 우리 주위의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알려주는 신호등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는데, 환경오염에 대한 경고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떠한 지역을 새로 개발하거나 녹화사업을 할 때 나무나 풀의 종류를 선택하고, 땅의 성질과 비옥도를 판정하는데 유용합니다.
8.15 광복 뒤 미군과 함께 들어온 미국자리공은, 대기오염으로 피해를 입은 나무의 상태가 밖으로 드러나기 전에 무리지어 자라는 것으로 밝혀져 생태계 파괴 정도를 알려주는 지표식물이라고 합니다.
집 옆에 두충나무를 베어낸 자리에서 자라난 자리공을 보면서 땅이 많이 황폐해진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이 자리를 다시 밭으로 일구려면 이듬해에는 콩이라도 심어둬야겠습니다.
나무를 베어낸 한 구석에 자리공 몇 주가 무리지어 자랐습니다.
늘 검게 익은 열매만 보다가 연분홍빛으로 핀 자리공 꽃을 보니 그 빛깔과 모양이 제법 볼 만합니다.
어릴 때 열매의 검은빛에 혹해서 살짝 씹어보았다가 혀가 얼얼해서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땅과 작물에 해롭다는 선입견 때문에 늘 천대받는 자리공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리공(商陸,상륙)
맛은 쓰고 성질은 차가우며 독이 있다.
비장과 방광경락에 들어간다.
대소변을 통하게 하고, 부기를 내리고, 뭉친 것을 풀어준다.
신장의 이상으로 생기는 부종이나 창만증(배가 불러오는 병), 그리고 각기와 인후부가 붓고 아픈 증상을 다스리고, 종기나 악창에도 효과가 있다.
꽃은 마음이 복잡하고 잘 잊거나 실수를 할 때 쓰는데, 그늘에 말려 두었다가 가루를 내어 술(청주)과 함께 복용한다."
상륙은 자리공의 뿌리를 말하는데, 열을 내리고 소변을 잘 나가게 하기 때문에, 비뇨기계에 염증성으로 생긴 질환과 종기나 악창에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성이 있기 때문에 신중히 써야 하는데, 특히 임산부나 소화기가 약한 사람에게는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이러한 독성을 다스리기 위해 약재로 쓸 때는 수치(약재의 성질을 목적에 따라 알맞게 바꾸거나 독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정해진 방법대로 가공 처리하는 일)를 해서 써야 합니다.
깨끗이 씻은 뿌리를 얇게 썰어 말린 뒤 쌀식초를 뿌려서 이것이 다 흡수되면 쪄서 약간 말린 뒤 볶아서 쓰거나, 뿌리껍질을 벗기고 이틀정도 물에 담가 두었다가 콩잎과 상륙을 층층이 쌓아 시루에 10시간쯤 쪄서 말려 씁니다.
콩잎이 없으면 검은콩이나 녹두를 써도 됩니다.
혹시 자리공을 먹었다가 중독 증상이 있으면, 감초와 검은콩 다린 물을 마시거나 녹두를 갈아 마시면 해독에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독성 때문에 최근에는 상륙을 약재로 쓰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봄철에 김장김치가 떨어지고 반찬거리가 없을 때 봄에 올라오는 자리공 새순을 캐서 끓는 물에 데치고 하루정도 물을 갈아 가면서 우려낸 뒤 초고추장에 무쳐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약재 대신 최근에는 자리공의 독성을 이용해서 천연 살충제로 쓰기도 합니다.
목초액이나 현미식초 그리고 자리공뿌리와 마늘, 고추를 섞어서 발효시킨 액을 물에 타서 쓰는데, 신기하게도 일반 살충제와는 달리 며칠이 지나면서 벌레들이 힘이 빠져 죽는다고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요.
밭 한쪽 구석에 천덕꾸러기처럼 보이던 자리공이 이제는 제법 쓸모 있는 녀석으로 보입니다.
어머니께 말씀드려서 집에 남은 목초액과 함께 자리공 천연 살충제를 한번 만들어 봐야겠습니다.
작물을 키우면서 병이나 해충이 없으면 걱정이 없겠지만, 충해나 병해를 입으면 애써 지은 한 해 농사를 망치는 것은 물론이고,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말아 속상하기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이듬해에는 이 자리공 희석액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해서 뒷밭 식구들이 건강하기를 기대해 봅니다.